솔직히 저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계단이나 턱이 '장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모차를 끌고 처음 여행을 나섰던 날, 계단 앞에서 멈춰서야 했을 때 그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울 은평구 봉산에는 그 막막함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무장애 편백나무 숲길이 있습니다. 대중교통만으로 닿을 수 있고, 유모차도 거뜬히 오를 수 있는 데크길이 정상까지 이어진 곳입니다.

무장애 데크길로 오르는 봉산 편백나무 숲 트레킹 코스
출발점은 6호선 새절역 3번 출구입니다. 여기서 은평 10번 마을버스를 타면 네 정거장 만에 종점에 내립니다. 배차 간격이 약 18분으로 긴 편이라, 저라면 미리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움직이겠습니다. 종점에서 봉산 입구까지는 400m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가는 길목에 편의점이 있어서 물과 간식을 챙기기 딱 좋습니다. 총 코스가 약 4km인 만큼 빈손으로 오르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편의점을 지나 교회 건물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무장애 숲길 안내판이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무장애 데크길이란, 경사면을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나눠 누구든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한 목재 보행로를 말합니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충분히 이용 가능한 구조입니다. 제가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계단이 나타났을 때였는데, 아이는 처음엔 신나서 앞서 뛰어오르다가 결국 안아달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완만한 데크길이 얼마나 반가운지 직접 겪어보니 더 실감이 납니다.
데크길 중간중간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오르면 평상형 쉼터와 데크 테이블이 갖춰진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사방이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피톤치드 향이 가득합니다. 피톤치드(Phytoncide)란 수목이 해충이나 세균을 방어하기 위해 방출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호르몬 저하와 면역력 증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국립산림과학원). 그늘 아래 평상에 누워 이 향을 그냥 마시고만 있어도 충분히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4년부터 심기 시작한 약 13,000그루의 편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서울 안에서 이 규모의 편백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놀랍습니다. 4월 초에 방문하면 벚꽃까지 겹쳐 눈이 즐거운 길이 이어집니다. 데크길 끝에는 화장실과 편백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숨을 고르기 좋고,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봉산 포토 아일랜드 전망대가 펼쳐집니다. 이 전망대에서는 북한산, 인왕산, 안산까지 서울의 산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봉산 트레킹 코스 핵심 정보 요약
- 출발: 6호선 새절역 3번 출구 → 은평 10번 마을버스 (배차 약 18분)
- 총 트레킹 거리: 약 4km, 해발 209m
- 편백나무: 2014년부터 조성, 약 13,000그루 규모
- 무장애 데크길: 유모차·휠체어 통행 가능한 완만한 목재 보행로
- 편의시설: 데크 벤치, 평상 쉼터, 화장실, 편백정 정자

봉수대 정상과 황금사찰 수국사, 하산까지
전망대를 지나면 이정표를 따라 봉수대까지 1.6km를 더 걸어가는 구간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경사진 계단 구간이 나타나 체력을 써야 하는 본격적인 산길입니다. 숲속 산길과 데크길을 선택해서 걸을 수 있는데, 산길은 봄에 벚꽃나무가 많아 꽃터널을 걷는 기분이 꽤 근사합니다. 힘들면 언제든 옆 데크길로 합류할 수 있어 부담이 없습니다.
이정표에서 약 35분을 걸으면 봉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정상에는 봉산정과 봉수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봉수대(烽燧臺)란 조선 시대에 봉화를 올려 긴급 상황을 원거리로 전달하던 통신 시설로, 봉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해발 209m로 수치상으로는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제가 방문했던 날은 아쉽게도 미세먼지가 끼어 있어 북한산 능선이 흐릿하게만 보였는데, 날씨 좋은 날을 골라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하산길도 무장애 데크가 잘 정비되어 있어 무릎에 큰 부담 없이 내려올 수 있습니다. 서두르고 싶다면 데크 옆 흙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산을 마치면 마주치는 곳이 수국사입니다. 1459년 세조의 명으로 창건된 왕실 관련 사찰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압도적인 황금빛 외관입니다. 대웅보전 안팎이 모두 금박으로 씌어져 있으며 그 무게만 약 33kg에 달한다고 전해집니다.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황금사찰이라 트레킹 마무리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수국사 내부에도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한글로 쓰인 현판과 나전 장식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화 미소전, 그리고 커다란 갓을 쓴 듯한 독특한 조형의 미륵불 입상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상적인 존재입니다. 제 경험상 트레킹 끝에 이런 문화유산을 만나는 코스는 흔치 않은데, 봉산은 그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점이 특별하다고 느꼈습니다. 수국사에서 구산역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골목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구산역 3번 출구에 닿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현재 노령 인구 증가와 보행 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무장애 도시숲 조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공원녹지). 봉산 무장애 숲길 일부 구간도 현재 보행로와 계단을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정책이 저와 무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 사업이 얼마나 많은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봉산 편백나무 숲길, 유모차로 끝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
A. 무장애 데크길 구간은 유모차로 충분히 오를 수 있습니다. 경사를 지그재그로 나눠 완만하게 설계되어 있어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다만 봉수대 정상을 향하는 후반 구간에는 계단이 포함된 숲속 산길이 나오는데, 이 구간은 데크길과 병행하여 선택할 수 있으니 유모차라면 데크길을 따르는 것이 현명합니다.
Q. 봉산 트레킹 총 소요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A. 새절역 출발부터 수국사 하산까지 약 4km 코스로, 여유롭게 걸으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벤치에서 쉬거나 편백정에서 머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반나절 코스로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봉산 편백나무 숲은 언제 방문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A. 제가 4월 초에 방문했을 때 벚꽃과 개나리가 동시에 피어 있어 걷는 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봄은 꽃길 트레킹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고, 여름에는 편백나무 그늘과 피톤치드 향이 더욱 진해져 산림욕 목적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전망대 조망이 제한될 수 있으니 날씨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수국사는 입장료가 있나요? 관람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나요?
A. 수국사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사찰입니다. 다만 사찰인 만큼 예불 시간대에는 조용히 관람하는 예절이 필요합니다. 트레킹 마무리 코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위치에 있어 일부러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방문이 가능합니다.
결론
솔직히 저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무장애'라는 단어를 여행지 검색 조건으로 넣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행지를 고를 때 계단이 얼마나 되는지, 유모차 이동이 가능한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봉산 편백나무 숲길은 그 조건을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충족시켜 주는 드문 장소입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고, 무장애 데크길로 정상까지 오르고, 황금사찰 수국사로 내려오는 이 코스는 아이를 동반한 가정뿐 아니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 관절이 좋지 않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분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길입니다. 이런 공간이 서울 곳곳에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까운 주말, 마을버스 배차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물 한 병 챙겨서 오르기를 권합니다.